크리에이터 산업, 자본의 활로를 찾다: M&A가 열어가는 새 지평

25 Mar 2025


크리에이터 산업, 자본의 활로를 찾다: M&A가 열어가는 새 지평


JTBC 토일 드라마 <협상의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대기업 M&A 전문가와 그의 팀이 대형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치열한 심리전과 협상을 벌이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단순 비즈니스 세계의 냉혹함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협상의 본질을 파고들며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저 계약서를 쓰는 기술 같아 보이지만, 배후에는 사람과 사람, 조직과 조직 간의 미묘한 이해관계와 감정의 줄다리기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드라마 속 치열한 협상의 풍경이 최근 크리에이터 업계에서도 현실로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코스닥에 상장한 레뷰코퍼레이션이 숏폼 마케팅사 ‘숏뜨’를 인수하며 사업 영역을 확장했고, 순이엔티는 배우 매니지먼트사 여진엔터테인먼트를 흡수합병해 종합 엔터테인먼트사로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뷰티 전문 MCN 레페리는 사모펀드(PEF)와 함께 지배구조를 재정비하고 IPO를 준비 중이다. 마치 드라마 속 협상가들이 여러 이해관계자를 하나의 테이블에 앉혀 거래를 성사시키듯, 크리에이터 기업들도 M&A를 통해 자본력을 키우고 새로운 성장 기회를 모색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흐름은 단지 한두 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광고주와 인플루언서를 연결하는 단순 MCN 모델이 주류였던 시절과 달리, 요즘은 숏폼 콘텐츠 제작, 배우 매니지먼트, 뷰티테일러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산업이 본격적인 체급 상승을 시도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전통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다양한 M&A와 자본 투자를 통해 체질을 개선해 왔듯, 크리에이터 산업 역시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는 것이다.

물론 M&A나 상장이 늘 성공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투자를 받아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재무적 부담, 기업 문화 충돌, 내부 조직 개편 등 적잖은 난관도 맞닥뜨릴 수 있다. 드라마 속에서도 경쟁사와의 협상 과정이 예측 불가의 상황으로 흘러가듯, 실제 크리에이터 시장에서도 인수·합병 후 예상치 못한 갈등이나 재정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또한 산업의 성장이 수반하는 통과의례로 볼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경쟁력 있는 플레이어만이 살아남아 시장 전체의 역동성을 높이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자본 투입과 M&A 흐름은 크리에이터 산업에 몇 가지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다양한 협업 모델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에는 개별 크리에이터가 스폰서를 찾아 직접 광고를 진행하는 사례가 많았다면, 이제는 크리에이터와 배우가 손잡아 숏폼 드라마를 제작하거나, 뷰티·패션 브랜드와 합작해 새로운 상품을 출시하는 등 한층 복합적인 형태의 콘텐츠가 나올 수 있다. 이는 단순 조회수 중심의 수익 구조에서 벗어나, IP(지식재산권)나 커머스, 라이선싱 등으로 이어지는 더 풍부한 수익 모델을 가능케 한다.

둘째, 산업 전반의 거버넌스와 인프라가 강화될 전망이다. M&A로 규모가 커진 기업들은 창작자 관리, 계약 체결, 수익 분배 체계 등 운영 전반을 체계화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진다. 그 과정에서 크리에이터 보호와 IP 관리, 투명한 수익 배분 등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이뤄질 것이고, 이는 궁극적으로는 창작자에게 보다 안정적인 활동 환경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셋째, 글로벌 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질 수 있다. 이미 K-POP, K-드라마 등 한류 콘텐츠가 해외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는 만큼, 규모 있는 크리에이터 기업이 M&A와 자본 유치를 통해 해외 진출 인프라를 갖춘다면,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단순 번역된 콘텐츠를 넘어 현지화된, 문화적 맥락이 담긴 매력적인 프로젝트를 선보일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드라마 <협상의 기술>이 보여주듯, 협상이란 단순한 계약서 작성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전략, 그리고 감정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행위다. 크리에이터 산업에서도 자본을 끌어들이고 M&A를 추진하는 과정은 마찬가지다. 누가 어떻게 협상을 진행하고, 어떤 시너지를 만들어낼지에 따라 산업 판도가 바뀔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벌어지는 M&A 소식은 크리에이터 산업이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한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시장 플레이어들이 단순 투자 유치나 홍보효과에만 치우치지 않고, 장기적 안목으로 콘텐츠 경쟁력과 창작자의 권익 보호, 그리고 투명한 협력 관계를 구축한다면, 이 산업은 엔터테인먼트 전체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 펼쳐지는 현실판 ‘협상의 기술’은 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할지도 모른다.